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의 경쟁력에 전체 수익의 90%를 이자에 의존한다. 세계 50대 은행이 한 곳도 없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IT 인프라를 갖추고도 핀테크 주도권은 IT는 물론 금융 변방국가로 여기던 중국에까지 밀렸다. 2015년 세계 15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금융의 현주소다.

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지난 수년 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금융시장 성숙도를 살펴보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2006년 49위에서 2007년 27위로 상승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한국 금융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2008년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37위로 하락했고 2009년에 다시 58위로 하락했다. 이후 2010년에는 83위, 2011년 80위, 2012년 71위, 2013년 81위, 2014년 80위를 기록하며 80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의 말라위(79위),
우간다(81위)와 비슷한 수준이다.

세부 항목 평가는 더 심각하다. WEF는 은행 건전성은 122위, 대출의 이용가능성 120위, 벤처자본의 이용가능성 107위, 금융서비스 이용가능성 100위로 평가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5위, 국가 경쟁력이 25위로 평가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금융 수준이 거의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회사들은 전혀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해 7월 영국 더 뱅커가 발표한 세계 은행 순위는 충격적이다.
중국공상은행(1위), 중국건설은행(2위), 중국은행(7위), 중국농업은행(9위) 등 그동안 금융 변방국가로 여기던 중국의 은행 4곳이
세계 10대 은행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도 JP모건체이스(3위), 뱅크오브아메리카(4위), 씨티그룹(6위), 웰스파고(8위)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외에도 영국의 HSBC가 5위, 일본의 미쓰비시UFJ가 10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 금융회사 중 한 곳도 50위안에 들지 못했다. KB금융지주가 68위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신한금융지주가 69위,
우리금융지주(현 우리은행)가 75위, KDB산은금융지주가 78위, 하나금융지주가 84위로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금융이 이처럼 경쟁력을 잃어버린 데는 무엇보다 금융회사 스스로 손쉬운 이자놀이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은행권 총이익은 39조원이었으며 이중 이자이익이 34조9000억원(약 89%), 비이자이익이 4조1000억원(11%)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은행권 총이익 38조5000억원 중 이자이익이 34조9000억원(약 91%), 비이자이익이 3조6000억원(9%)으로 이자를 통한 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안정적인 이자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금리, 저성장으로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들의 NIM은 역대 최저 수준인 1.79%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98%보다도 0.19%p 낮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금리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의 돈을 받아서 다시 빌려주고 수익을 내는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서비스 모델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금융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육성해야 한다. 해답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과 IT의 융합, 즉 핀테크에 있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모바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안일한 대응으로는 자칫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금융회사 외에도 이베이가 페이팔로 구글이 구글월렛으로 애플이 애플페이로 치고 나가고 있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도 핀테크에 합류했다. 중국의 경우도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핀테크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삼성페이를 선보이고 지난해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페이와 뱅크월렛카카오를 출시하는 등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들도 핀테크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하다.

한국 금융이 핀테크를 앞세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금융위는 올해 초 업무계획 등을 통해 사전 보안성 심의를 폐지하고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규제 완화를 하기로 했다.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규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오프라인에 갇힌 현재의 규제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핀테크 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뿐 아니라 금융지주, 은행,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 등도 보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도전적으로 핀테크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특히 금융권과 IT업계 모두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해서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국형 핀테크 서비스를 육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애플페이, 알리페이 등의 기존 모델만 따라갈 경우 미국, 중국 업체들을 앞서기 어렵다. 외국의 모델을 참고해 인터넷 모바일 기술 등 한국 금융이 가진 다양한 강점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국 금융이 선도할 수 있는 핀테크를 선보여야만 한국 금융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