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유독 IC카드의 보급이 부진한 나라다. 유럽이나 아시아 지역에 비해 금융권이나 유통업계의 IC카드 채택이 늦다. 여전히 미국 금융권이나 유통업계에선 마그네틱 카드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형 유통점인 ‘타깃(Target)’의 고객정보가 대량
유출되면서 IC카드 도입을 서두르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진전은 별로 없다. IC카드 도입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는데다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오는 2015년 10월까지 판매업체와 카드발급 금융기관에게 ‘EMV(Europay Mastercard Visa)’ 방식 스마트카드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주요소의 경우 2년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때까지 EMV 스마트카드와 POS단말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발행하는 카드 사고의 책임은 해당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 은행과 판매업체에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EMV 스마트 카드의 보급은 낙관적이지 않다. 최근 캘리포니아주가 IC카드 도입을 명문화한 법률안을 마련해
상정했으나 처리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결국 법안 통과가 무산되고 말았다.

3일(현지시간) 컴퓨터월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최근 캘리포니아 유통사업자들에게 ‘EMV(Europay Mastercard Visa)’
표준 방식 스마트 카드의 적용을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했으나 처리 마감 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제리 힐(jerry Hill) 주 상원의원이 제안한 법률안(S.B 1351)은 오는 2016년 4월 1일까지 유통업체들이 EMV 방식 직불카드와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도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유소의 경우 2017년 10월까지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률안은 캘리포니아 상원내 ‘은행 및 금융기관 위원회’ 표결에서 5:2의 의견으로 전체 회의로 넘겨졌으나 법안 처리 마감
기간인 5월 30일을 넘기는 바람에 무산됐다.

EMV 스마트 카드를 도입하면 기존의 마그네틱 카드 보다 보안성이 강화되는데도 불구하고 빨리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법안과 관련해서도 많은 반대 의견들이 분출했다. 자칫 불필요한 규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20여개 그룹이 이번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이들 그룹 가운데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상공인회’는 “카드 해킹을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EMV카드를 강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EMV 스마트 카드를 도입하려는 광범위한 노력이 미국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주만 독자적으로 법안을 만들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캘리포니아주가 EMV 스마트 카드 도입을 강제하는 법률안 제정에 실패함에 따라 EMV 스마트 카드의 전면적인 도입은
또 다시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EMV 스마트 카드 도입이 빨리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컴퓨터 월드에 따르면 미국에 EMV 스마트카드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5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EMV 스마트 카드 도입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이다. ‘기술 표준을 위한 미국 주유소및 편의점 연합(PCATS)’에 따르면 EMV카드를 도입하려면 주유소와 편의점에 설치된 80만여대의 POS단말기를 전면 교체해야 하는데, 최대 40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판매업체 및 유통점에 확대하려면 최소한 1300만대의 POS 단말기를 교체해야 한다. 여기다 금융권의 카드 발급 비용과 네트워크 시스템 개선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둘째는 보안 측면에서 ROI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MV 스마트 카드의 적용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EMV 스마트 카드 도입 유통점이나 판매점들은 EMV 카드 결제시 별로도 PIN(개인인식번호)를 입력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PIN 입력 대신 서명을 요구하거나 아예 PIN 없이 결제를 완료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PIN을 입력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만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만일 PIN 입력 없이 다른 인증 방법을 도입한다면 절반의 인전만 확보되는 셈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 EMV 스마트 카드를 도입했는데 정작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EMV 카드 도입시 카드 뒷면에 마그네틱 카드를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EMV 카드에 입력된 개인정보를 암호화하지 않을 경우 보안에 취약할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적인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다양한 모바일 및 온라인 결제수단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EMV 스마트 카드를 전면 도입할 경우 오히려 기술적인 추세에 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실물 카드 대신 가상 카드가 보급될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 EMV 카드를 어렵게 도입했는데 정작 몇년 쓰지 못하고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네째는 EMV 스마트 카드 도입에 걸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비자와 마스터는 오는 2015년 10월까지 EMV 카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지난 2003년 EMV 스마트 카드를 도입한 캐나다의 경우 10년이 지났지만 EMV 카드를 처리할 수 있는 POS단말기는 전체 단말기의 85%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미국에 EMV 카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전면 도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전면 보급 시점에 ‘엔드 투 엔드’ 보안을 보장하는 다른 결제수단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다섯번째는 금융권과 소매업자간에 벌어지고 있는 수수료 분쟁 문제다. 미국은 지난 2010년 시행에 들어간 ‘더빈 수정법(Durbin Amendment)’에 따라 카드 거래 수수료 상한선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놓고 일어난 은행과 소매업체간 법률적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종 판결이 올해 가을쯤 나올 예정인데 소매업체들이 판결을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여러 저해 요인이 있어 미국내 EMV 스마트 카드의 도입은 결코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